다시 태어난 기분이야

이렇게나 좋아하실 거였음 몇 년 전에 사드릴 것을.
오늘 스마트폰을 선물 받으신 뒤 몇 번 ‘밀어서 잠금해제’를 하는 법을 익히고는 할머니가 보인 첫 반응이다.
1929년생 강경심 여사님. 내가 어릴 적 새로 나온 옷은 먼저 입히시고, 아침 TV프로에서 좋다는 음식은 먼저 해먹이시고, 유행하는 머그잔을 사다가 커피를 사서 타 드시는 얼리어답터로 사시더니 아흔 넷 연세에 스마트폰을 배우신다.
자꾸 망가지는 폴더폰과 줄 이어폰은 2023년엔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물건이 되면서(중고폰은 있지만) 어쩔 수 없이 할머니께 스마트폰을 사드리게 되었다.
사실 치매약을 드시고 계신 할머니가 새로운 것을 학습하신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웠다. 몇날 며칠을 인터넷이서 ‘효도폰’ 검색을 하다가 몇 군데 발견하긴 했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. ‘자주 쓰는 물건은 예뻐야(손이 갈 만큼 마음에 들어야) 한다’는 할머니와 나의 공통된 지론에 맞지 않았다.

평일 저녁, 할머니의 소환에 요양원으로 달려간 김에 여쭈었다. “할머니, 내 핸드폰처럼 생긴 거 사드리면 할 수 있겠어요?” 대답은 뜻밖이었다. “열심히 배워봐야지.”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노래 부르신 지는 꽤 되었는데 그 정도의 의지까지 있으신 줄은 미처 몰랐다.
오늘 밀어서 잠금해제와 영상통화 받는 법을 배우신 할머니는 만면에 미소를 띄고 좋아하셨다. “우리 이쁜 강아지가 어기(화면 속) 있네!”를 반복하셨다. 서너 번의 교육이 더 필요하겠지만, 오늘 곧잘 따라하시는 걸 보니 가능성이 보인다. 고스톱 게임과 갤러리에 채운 가족 사진들, 그리고 유튜브로 옛날 드라마 보는 법도 가르쳐드릴 계획이다.
그런 할머니에게 걱정은 있다. 걷기 연습이 줄며 배변실수가 잦아졌다는 것. 그리고 글씨를 읽는 건 쉬운데 쓰기가 점점 어려워져간다는 것.


요양원 같은 방 건너편에 계신 할머니 두 분은 할머니를 ‘손녀딸 오면 애기가 된다’고 놀리셨다. 알고보니 한 분은 할머니와 동갑, 다른 분은 열살 아래였다. 여태 우리 할머니를 동생으로 대하던 한 분은 민망해하시며 “나보다 한참 아래로 봤는데 얼굴이 젊어도 너무 젊으시네.” 하셨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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